
중동 곳곳에서 살육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만 명의 생사를 가르는 공포스러운 말들이 세상에 던져진다, 머리속을 파고든다. 그러나 이 말들은 너무 가볍고 빠르게 소비되어 마치 잔혹한 장난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찰나조차 "이 미사일 실화? 역대급 미사일 비 쏟아져" 같은 상업적 광고 문구로 치환된다. 논리는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 아래 의미를 잃었고, 소통 없는 말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진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대화는 불가능하다. 무의미하다.
우리는 진실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광고 카피처럼 내 감정을 더 강렬하게 흔들어줄 '자극'을 쫓고 있는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실은 없다. 오직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전쟁 역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의해 설계된 '해석들의 격전장'일 수 있다.
닭 수만 마리를 키우는 농장을 떠올려 본다. 장사꾼과 농부가 마주 앉아 가격을 흥정한다. 이 흥정이 끝나는 순간 죽어야 할 닭의 숫자가 결정된다. 백, 천, 만... 여기서 숫자는 기호가 아니라 곧 사라질 생명의 무게다.
주목할 점은 이 흥정이 결코 닭의 크기나 건강 상태 같은 '실재하는 사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날씨, 우주의 기운, 유행가, 스포츠 경기 같은 본질과 무관한 말들이 끝없이 오간다. 왜인가? 사실(Fact)은 이미 양측 모두에게 노출된 고정된 값이기 때문이다. 닭이 몇 마리인지, 상태가 어떤지는 이미 드러난 패다.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로는 상대를 흔들 수 없고, 따라서 승패를 가를 수도 없다.
흥정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교란'이다.
승패는 더 큰 이윤을 챙기거나 상대의 기를 꺾는 지점에서 갈린다. 이를 결정짓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들이다. 이 '가짜 말'들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정신을 피로하게 만들고, 판단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논리의 틈새를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전략적 도구다.
전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총과 포탄 뒤에는 '말의 전쟁'이 있다. 수많은 발언과 기사, 해석들은 사실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포, 불안, 탐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흔들기 위해 설계된다.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틈새에서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 내려진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대중은 진실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더 강하게 심장을 자극하는 쪽을 '진실'이라 믿어버린다.
세계는 거대한 흥정의 테이블 같다. 국가와 권력, 언론은 끊임없이 '해석'이라는 이름의 가짜 패를 던진다. 그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묻는 행위는 무력화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세련되게 감정을 선동하느냐, 누가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유리한 결정을 끌어내느냐는 '게임의 법칙'뿐이다.
그 비정한 흥정의 끝에서 누군가의 내일이 지워진다. "운명의 시간, 24시간 후 중동 문명의 미래가 결정된다." 이 문구조차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비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흥정을 위한 최고의 광고 카피일 뿐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 감정에 필요한 도파민 생성을 자극할 자극원일 뿐이다. 수만 명의 비명은 스마트폰 화면 너머 한 조각 가십거리가되고, 타인의 생사는 그저 무료한 일상을 견디게 해줄 자극적인 구경거리가 된다.
